14년째 거리의 노숙자들을 살피고 있는 강주한 목사
더 잃을 게 없는 그들에게 남은 건 ‘회복’ 뿐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는 힘은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관심과 친절에서 비롯된다” 단편소설 작가 조지 손더스가 한말이다.
14년간 일주일에 한번이면 728번, 그 중 단 며칠만을 제외하고 700번은 거뜬히 넘는 날을 홈리스 사역에 성심을 바쳐오고 있는 강주한 목사를 따라서 컴머스 스트리트(2000 Commerce St)에 자리한 홈리스 텐트를 찾아가봤다. 첫번 방문으론 동행취재의 글을 시작할 수도 없었고, 일주일 내내 처음 경험한 풍경이 스스로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켜서 두번째 방문의 동행을 강주한 목사에게 부탁하고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다운타운가 후미진 현장에 다시 당도했다.
7월 24일 월요일 정오, 하이웨이 콘크리트의 육중한 기둥 앞에 차를 멈추고 1식을 해결해 줄 햄버거와 물, 얼음 가득한 아이스박스와 찬 커피가 담긴 알루미늄 통을 꺼내 차곡차곡 준비해온 한끼의 음식물들을 접이식 탁자위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텐트 이곳저곳에서 노숙자들이 몰려온다.
온화한 미소로 화답하는 그들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먼발치로만 자꾸 물러섰던 것이 홈리스 텐트를 처음 찾았을 때의 심정이었다. 그래도 처음이 아니라고 길거리의 노숙자 텐트가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왔고 거리낌 없이 텐트를 직접 찾아다니며 노숙자들에게 인사를 건내며 말을 붙여보는 것까지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지만 내겐 낯설지가 않았다.
긴장감이 팽팽했던 지난 주와 다르게 홈리스들과의 만남이 순조로웠던 이유가 바로 첫날에 보지못하고 지나쳤던 강주한 목사의 해맑은 미소때문이었다는 걸 필자는 일주일만에 깨닫게 됐다. 함께 홈리스 사역에 동행한 김문수 부목사와 이승재 전도사(이상 비전교회), 그리고 이번 주엔 함께 못왔지만 이발 봉사자 박수경 성도(중앙장로교회)의 해맑다는 표현으론 너무 부족한, 잡스러운 것 하나 섞이지 않은 그 티없이 방긋한 표정을 노숙자들에게 변함없이 전해주었을 것이기에 노숙자들은 그들이 받은 온화함을 내게 똑같이 화사한 미소로 되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 반이 넘는 동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삼 사십명 가량의 노숙자들은 이미 한 가족이 된거나 진배없는 한국인 몇사람이 건내주는 음식물을 서두르지 않고 질서있게 받아갔고, 삼 사십명 노숙자의 이름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부르며 얼음 가득한 커피머그컵을 손에 쥐어주는 강목사의 친절이 14년간 쉼없이 달려온 수고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내 깊숙한 가슴으로 파고 들어왔다.
지난 주 월요일도 그렇게, 적개심이 아닌 반가움으로 노숙자들이 기자를 대했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굴곡진 인생사가 뭉개져 쌓어있는 텐트촌이 그 전주보다 훨씬 극성스럽게 덥고 비위생적이었음에도 희한하게 악취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과 헤어질 무렵에서야 알게 될만큼, 그들의 감사를 표현하는 표정이 나를 악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 채로 나를 더 극진히 격려하며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두번 찾아간 컴머스 스트리트 2000번지는 휴스턴 수십군데 홈리스 텐트촌들 중의 하나일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홈리스 이슈에 관한 논란이 벌어지는 휴스턴의 대표적 현안이다. 기자는 홈리스 사역의 당사자들과 동승한 차안에서 숱하게 전개되고 있는 홈리스의 관련 정책과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등의 사례들을 듣게 됐다.
당연하게 받아들인 홈리스사역
14년 전에도 별반 차이없이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강주한 목사에게 직접 그들이 있는 곳으로 처음 찾아갔을 때의 심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내게 돌아온 답변은 거침이 없는 “NO!”였다.
휴스턴에서의 정착을 시작한 14년전이 홈리스 사역을 시작한 시기와 똑같게 강 목사는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외손자가 하나님 품안에서 커가기를 바라는 외할머니의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온 탓에 당연히 목회자가 되겠다는 꿈 말고는 다른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강주한 목사였다.
그를 통해 홈리스 노숙자들과 만나기 전까지 사실 내게 비춰지는 그의 목회자의 삶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았었다. 어쩌면 사회의 밑바닥 저 끝까지도 꿰뚫어보는 해안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고 난 그 언젠가 생겨났을 것이고, 절망만이 가득한 곳에서 의외로 희망을 노래하며 엿보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물로 받았을 것이기에 그런 느낌을 가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더 잃을 게 없는 그들에게 남은 건 ‘회복’ 뿐이지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14년째 봉사를 하고 있고, (중앙장로교회)이재호 목사님을 비롯해 예배중 광고시간을 통해서 저희들 사역에 도음을 주자고 말씀하시는 여러 목사님들, 그리고 이름 알리는 게 부끄럽다며 따뜻한 손길을 살며시 건네주시는 많은 분들의 정성이 있기에 앞으로도 홈리스 사역은 멈추지 않는다”고 강 목사는 힘주어 말한다.
‘검은 종이 위의 밝은색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그가 추구하는 희망도 어쩌면 그곳에서 그의 눈에 더 잘 띄지 않을까? “노숙자들이 원하는 시간 언제고 몸을 깨끗하게 씻을 이동 샤워차량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 서두르고 있는 목표입니다. 샤워차량을 운영하려면 속옷이랑 비누 샴푸 칫솔 치약이 구비되어야 하니 이에 따른 따스한 손길이 더 필요해지겠죠.” 강 목사는 이런 그의 소망에 동참하는 후원자들을 한명한명 거론하며 방긋한 미소를 감추질 못한다. “중남부 지역회, 오동교회,오석교회, 민주평통휴스턴협의회와 호남향우회, 김용천 치과, 안용준 변호사, 그리고 정성태님 등등”을 나열하며 혹시 한 사람이라도 그가 부르는 사람이나 단체중에 빠지지는 않았나 갸우뚱하는 모습이 기분좋게 받아들여졌다.
홈리스의 존재를 골칫거리로만 생각했던 나였다. 거리의 미관을 해치고 불결한 환경을 만드는 홈리스들에게 선뜻 손을 내밀 기회를 만들어 준 강 목사에게 감사한다. 그 감사함이 앞서 말했던 것처럼 거창한 것에서가 아닌 작은 관심과 친절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에 더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조지 손더스가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내 평생 최대의 후회는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멋진 인생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친절하라”
-코리아월드 편집국-
현장에서 홈리스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휴스턴 사역자들의 모습